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씹뜨억

[사랑과 선거와 초콜릿] 원작 미연시와 비교한 애니의 패인에 대하여

 

 

 

다짜고짜 결론부터 말하자면 애니는 원작에 비해 정말 못 만들었다. 솔직히 애니를 접하기 전에 먼저 원작 게임을 만족스럽게 플레이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기대치가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선거라는 참신한 소재와 수채화풍의 독특한 CG 등 수많은 장점을 가진 미연시의 애니가 이 모양 이 꼴로 나왔다는 것은 기대치를 아무리 낮춰봐도 씁쓸할 정도의 수준이다. 하지만 필자는 애초에 원작을 초월하는 애니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글은 사랑과 선거와 초콜릿(코이초코) 원작에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한탄 정도로 생각하고 읽어주면 좋겠다.

 

 

 

 

1. 지나친 상업적 연출

 

1화의 맨 처음 부분, 광고 목적의 타 게임 히로인들이 코이초코의 어떤 히로인들보다도 먼저 나와 애니의 막을 연다. 이 전후사정을 알고 애니를 보는 사람은 별 생각 없이 지나갈 장면이지만, 모르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게 문제(참고로 저 히로인들은 코이초코 미연시 제작진이 만든 '지금 당장 오빠에게 여동생이라고 말하고 싶어'의 히로인들. (전연령판)).

 

광고 목적으로 다른 작품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애니는 이것 뿐만이 아닌데 딱히 문제시 될 것은 없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애초에 다른 작품의 캐릭터가 등장하면 그 캐릭터를 아는 사람은 깨알같은 재미를 느끼고 모르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냥 조연이구나'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져야 되는데, 다만 코이초코는 그렇지가 않다. 애니의 시작부터 스토리의 전개를 방해하는 식으로 거의 매 화에서 꾸준히 등장하고 마지막 12화까지도 갈등이 최대로 깊어지는 상황에서 감정이입을 끊어버리며 뜬금없이 등장한다. 심지어 12화의 엔드카드로도 등장하는 패기를 발산. 극의 흐름을 방해할 정도의 의미없이 잦은 등장은 전후사정을 아는 사람들도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고, 모르는 사람들은 '저 애들은 누군데 뜬금없이 계속 나와?'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애니 제작진들은 비록 광고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정작 본 작품은 망친 것이다.

 

 

 

2. 1쿨 애니와 미연시 원작 애니의 한계

 

미연시를 원작으로 한 애니의 장점이자 단점은 뿔뿔이 흩어져 있는 루트를 합쳐, 하나의 이야기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다만 이것이 장점이 되느냐, 단점이 되느냐는 애니 각자 하기 나름에 달렸는데, 코이초코는 미연시 원작 애니의 한계에 그대로 막힌 케이스다. 거기다 1쿨 특유의 생략이 많은 스피드한 전개까지 추가되었으니 절망적인 수준.

 

 

1) 이사라 루트의 괴롭힘(이지메) 장면은 반드시 나왔어야 할 장면인가

 

먼저 히로인 중 한명인 '아오미 이사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타카후지 학원 1학년의 경제 특대생(학비를 못 낼 정도로 가난한 학생들이 학교의 일을 해서 학비를 마련하는 학생 제도) 아오미 이사라. 원작 게임의 이사라 루트는 괴롭힘(이지메)을 당하는 이사라를 보고 경제 특대생 제도의 문제점을 깨달은 오오시마(남주인공)가 식품 연구부원들과 대립하면서도 경제 특대생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피나는 고생 끝에 결국 오오시마는 학생회장이 되어 경제 특대생 관련 문제들을 깔끔하게 해결하고, 식품 연구부까지 지켜내며, 끝으로 이사라와 이어지고 해피엔딩. 이것이 원작의 이사라 루트다. 하지만 애니에서의 이사라는?

 

괴롭힘을 당하는 이사라를 보고 경제 특대생 제도의 문제점을 깨달은 오오시마. 하지만 문제를 깨달았을 뿐이고, 오오시마는 다른 히로인의 루트를 찔러보느라 별다른 대응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오시마에게 플래그가 서는 이상한 사태가 발생한다.

 

보면 볼수록 '안 그래도 짧은 1쿨 애니에 굳이 이사라 에피소드를 넣은 이유가 뭐였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아르바이트 장면이나 동생들과의 식사 장면처럼 이사라 팬들을 기쁘게 할 에피소드도 아니다. 오히려 애니의 전개를 방해하는 괴롭힘 에피소드만 계속 나오는데, 이는 이사라 팬들을 멘붕시키기엔 충분. 거기다 경제 특대생에 대해 별다른 해결책없이 끝나게 되는 우울한 전개는 최소한 이사라 팬들의 BD 구매 욕구를 한없이 떨어뜨렸고, 이는 결국 판매량의 부진으로 나타나게 된다.

 

 

2) 애니 장르를 바꿔버리는 미치루 루트의 미친 전개

 

다음으로 모리시타 미치루. 학원물을 순식간에 능력자 + 액션물로 바꿔버리는 미친 전개의 중심에 있는 히로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미치루 루트는 이미 원작 게임에서도 '미친 전개'로 유명하기 때문에 이 루트는 어떻게 해서든 분량을 줄이거나, 완전히 제외시켰어야 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욕심 많은 제작진은 미치루 루트를 버리지 않고 1쿨에 억지로 끼워 맞추느라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게 되는데, 결과는 참패.

 

미치루가 오오시마를 스토킹한 이유, 미치루 눈에 비치는 색깔의 정체, 미치루와 학생회장의 관계, 원작 게임과는 다르게 애니에선 그 무엇도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았고, 원작 게임을 접하지 않고 애니만 본 사람들에게는 왠지 모를 찝찝함을 남기게 된다.

 

 

3) 사츠키 루트 & 미후유 루트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즈키가 갑자기 오오시마를 끌어안는 장면이나 미후유가 갑자기 흉터를 드러내고 달려나가는 장면 등, 거의 모든 장면들이 '갑자기 왜 저래?'라는 생각이 들게 했으며 그에 따른 설명도 충분하지 않았다. 남주인공의 독백이나, 캐릭터들의 세세한 설정 등을 보여 줄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1쿨 애니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루트를 섞는 무리수를 실행, 이는 곧 애니의 실패로 직결됬다.

 

 

 

3. 원작에 대한 잘못된 이해 (스미요시 치사토에 대하여)

 

작품의 제목인 '사랑과 선거와 초콜릿'을 눈여겨보자. '사랑'과 '선거'는 모든 루트의 핵심 소재이다. 애초에 남주인공이 선거 운동을 통해 히로인들과 만나며 사랑을 하는 내용이니 당연지사.  반면 '초콜릿'과 연관성이 있는 히로인은 치사토밖에 없고, 소꿉친구라는 사기 설정 덕분에 '코이초코의 진히로인은 치사토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애니의 가장 결정적인 패인은 바로 '스미요시 치사토'와 이어졌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치사토는 코이초코의 엄연한 진히로인이다. 애니에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 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스미요시 치사토는 코이초코의 진히로인이 절대 아니다.

 

먼저 원작 미연시의 이야기를 해보자. 코이초코의 루트 공략은 조금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다. 치사토를 제외한 미후유, 사츠키, 이사라, 미치루, 이 4명의 히로인들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먼저 치사토의 공략이 필수불가결하다. 알기 쉽게 말해서, 먼저 치사토 루트를 클리어하지 않는 한, 그 어떤 히로인도 공략할 수 없다는 시스템이다.

 

어째서 이런 구조로 되어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제일 먼저 치사토 루트를 클리어하지 않는다면, 다른 루트에서의 치사토를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초콜릿을 먹지 못하는 이유, 오오시마에게 집착하는 이유, 다른 히로인들과의 사랑을 병적으로 방해하는 이유 등에대해 이해하지 않고 다른 루트를 먼저 플레이하게 된다면 치사토는 단순히 욕심 많은 미친 여자로 보일 것이다. 그걸 아는 미연시 제작진들은 치사토 루트로 게임의 스타트를 끊게 하고, 다른 히로인들의 루트에선 치사토에게 진히로인이 아닌 '라스트 보스'의 위치를 부여한다. 실제로 치사토는 자신의 루트를 제외한 다른 루트에서는 끝없는 질투와 도가 지나칠 정도의 방해공작을 펼치는데, 라스트 보스라는 칭호에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특히 미후유 루트에서의 치사토는 무섭기로 유명). 거기다 치사토와의 갈등이 해결됬을 때만 등장하는 OST도 따로 있을 정도로 라스트 보스의 위치는 뚜렷하다.

 

이처럼 치사토의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고 히로인(모든 히로인 해당)과 이어지는 것이 이 모든 루트 제 1의 목적이며 코이초코만의 독특한 특징이자 재미인데 애니는 이것을 깔끔하게 포기했다. 이는 타 미연시와는 다른 코이초코만의 차별화된 재미를 처음부터 포기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애초에 사랑과 선거와 초콜릿이 애니화되는 시점에서 선택지는 두 가지밖에 없었다. 하나, 치사토와 이어지지 않고, 치사토와의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둘, 치사토와 이어지되, 다른 히로인 루트 에피소드는 거의 넣지 않는다. 하지만 애니 제작진들은 굳이 주어진 선택지를 버리고 최악의 선택을 해버린다. 치사토 루트로 가버린 주제에 치사토에 대한 설명이 지나치게 부족했다. 오오시마의 독백, 치사토의 상처 등 시간을 들여서 자세히 나왔어야 할 장면들이 다른 히로인들의 에피소드에 밀려 빠르게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치사토를 진히로인의 자리에 앉히는 대신, '오오사와'라는 오리지널 캐릭터를 라스트 보스로 사용하지만, '미친 학교' 이미지만 굳힌 후 싱겁게 끝나버렸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애니의 결정적 패배 요인이 되버리고, 이는 곧 판매량의 부진으로 이어졌으며, 이제는 서서히 잊혀져가는 그냥 망한 애니가 되어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