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비트] 루프설에 대하여

 

 

마에다가 처음 엔젤비트의 시나리오를 썼을 때 그 분량이 거의 6쿨 분량의 애니와 맞먹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질대로 알려진 사실이다. 그 6쿨짜리 시나리오로 1쿨 애니를 만들기 위해 꾹꾹 눌러 담으니 버틸 수 있을리가 있나. 그 때문에 연출이나 작화, 음악 등은 높은 퀄리티로 제작됬음에도 불구하고 엔젤비트는 '스토리 개연성의 철저한 부재'와 '미회수 떡밥','설정 오류'라는 혹평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런 건 애니에 대한 애정만 있으면 별로 상관없다. 쿠소 애니 가지고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보다 더한 분석을 할 수 있는 것이 오타쿠들이다. 미회수 떡밥과 설정 오류는 그냥 좋은 자료가 될 뿐이다. 내 입맛대로 과잉 해석하고 혼자 만족하면 그만이다.

 

방영 직후부터 완결까지, 엔젤비트도 이미 분석 좋아하는 오타쿠들 손을 거칠대로 거친 애니다. 황당한 해석부터 묘하게 그럴 듯한 해석까지 이미 웹상에 너무나도 많은 해석들이 있다. 이번에는 그 중 몇 개의 가설만 간추려서 내 맘대로 다시 해석해보고자 한다. 그렇기에 아마 새로운 정보보다는 억지스러운 게 많을 것이다. 곧 있으면 엔젤비트 1st beat 가 나오는데, 이 게임이 발매되면 이 수많은 재밌는 해석들 중 대부분은 휴지조각이 될 게 뻔하므로 지금 정리하지 않으면 할 기회가 없을 것 같기에..

 

오토나시 유즈루 NPC 관리자설, 루프설

 

타치바나 카나데는 오토나시의 심장을 이식받은 이후에 모종의 이유로 사망했다. 그 때문에 죽은 시간 순으로 사후세계에 온다는 설정이라면 명백한 설정 오류.

 

여기서 선택지는 네 가지다.

 

 

첫 번째. 오토나시는 삶에 남은 미련이 없었으므로 사후세계에 올 필요가 없었지만 길을 잃고 해메다 카나데보다도 늦게 오게 됬다.

 

 

작중에서 나오다시피 오토나시 본인도 길을 해메다 사후세계에 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이유가 사실이라면 1화에서 눈을 떴을 때 오토나시의 기억이 없던 것도, 카나데보다 사후세계에 늦게 온 것도 길을 잃은 후유증이라면 자연스럽게 설명이 된다. 하지만 단순히 길을 잃고 해메다가 늦게 왔다고 하기엔 우연적 요소가 너무나도 많다. 삶에 대한 미련이 없는 사람이 우연히 길을 잃고 사후세계에 왔는데 그 곳에는 우연히 자신의 심장을 이식받은 소녀가 있었다. 우연히도 그 소녀는 자신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지 못한게 한이 된 소녀였다니..

 

 

 

두 번째. 카나데는 오토나시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지 못한게 삶에 대한 미련이므로 오토나시가 사후세계에 오지 않으면 카나데는 영원히 성불할 수 없게 된다. 그 이유로 삶에 대한 미련이 없던 오토나시가 사후세계로 오게 됬다.

 

첫번째 설과도 이어지는데, 단순히 길을 잃고 해메다 카나데보다 사후세계에 늦게 왔다는 설보다는 굉장히 그럴 듯하다. 삶에 대한 미련이 없는 오토나시는 사후세계에는 이레귤러적 존재지만 카나데의 성불을 위해선 꼭 필요한 존재였다. 결국 사후세계에서의 오토나시의 존재의의는 카나데에게 달렸던 셈이다. 오토나시가 오지 않았다면 카나데에게 사후세계란 한을 남긴 채 영원의 삶을 살아가는 이상한 장소에 불과할 뿐이고.

 

 

세 번째. 사후세계에 온 인물들의 살던 시간대가 전부 다르다. 혹은 평행세계.

 

 

이 가설로도 카나데가 오토나시보다 사후세계에 일찍 온 이유가 일단 설명은 된다. 약간 억지스러울 수도 있으나 노다의 도끼나 닌자 복장을 하고 다니는 시이나의 표창, 후지마키의 검 등을 보면 같은 세계를 살아왔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사후세계에서 자신들이 살아온 진짜 세계의 공통된 화제로 이야기를 잘 안 하는 것도 설명이 되고. 카나데가 오토나시보다 늦게 사망한 것은 사실이나 '각 세계별로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라는 설정을 꺼내는 순간 모든 것이 해결. 메데타시 메데타시. 근데 솔직히 이건 좀 많이 억지같네..

 

 

네 번째. 오토나시는 사후세계에 미리 와있었지만 1화에서 눈을 떴을 때 이전의 기억이 없다.

 

 

오토나시 유즈루는 카나데가 사망하고 사후세계로 오기 전 이미 와있었다는 가설. 이 가설은 루프설과도 이어진다.

 

13.5화를 보면 오토나시는 전선 동료들이 전부 성불한 세계에 홀로 남아 학생회장직을 맡고 사후세계에 오는 혼들을 바른 길로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NPC들 사이에서 도는 하나의 소문. 

 

 

'학생회장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과연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여기서 선택지는 두 가지.

 

A. 오토나시 하츠네 (유즈루의 여동생)

 

사후세계가 아닌 진짜 유즈루의 인생에서 삶의 목적 그 자체였던 여동생, 오토나시 하츠네. 하지만 여기서 오토나시 하츠네를 기다린다는 의견은 억지에 가까운게, 하츠네는 유즈루보다 훨씬 먼저 죽었고 사후세계에서 만나는 상황은 커녕 조금의 소식조차 없다. 그리고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아래에..

 

B. 타치바나 카나데

 

 

학생회실, 옆의 화이트 보드에 전선 멤버들의 사진이 붙어 있는 것을 보면 오토나시는 사후세계에서 만난 친구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오토나시의 옆에는 카나데와의 추억이 담긴 꽃이 놓여져 있다.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은 책상 위로 그녀를 상징하는 꽃병만이 덩그러니 놓여져 있는 것을 보면 오토나시가 그녀를 얼마나 애틋하게 그리워하는 지 느낄 수 있다.

 

 

12화 중, 사후세계를 개변시킬 수 있는 엔젤 플레이어의 관리자가 프로그래밍한 NPC로부터 들은 설명. 관리자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사랑을 알고 혼자서 사후세계를 떠나가버린 한 명의 여성을. 하지만 그녀를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나도 길었고 그는 더이상 정신줄을 잡고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을 NPC화 시키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NPC가 되어 그녀를 다시 만나는 날만을 소망하며..

 

 

실제 NPC가 된 후에도 강한 마음만 있다면 다시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는 건 타카마츠로 인해 증명이 됬다. 여기까지 봤을 때 세울 수 있는 하나의 가설은 바로 엔젤 플레이어의 프로그래머, 즉 일련의 소동을 일으킨 자가 바로 '오토나시 유즈루'라는 가설.

 

 

오래 전, 오토나시 유즈루는 보답받은 인생을 살았지만 기억을 잃고 해메다 사후세계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는 얼마후 타치바나 카나데를 만나게 된다. 오토나시와 카나데는 서로 사랑하게 되고 카나데는 오토나시와 같이 지내며 자신의 심장이 오토나시의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카나데는 오토나시에게 삶의 미련이었던 '나에게 삶을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전한 뒤 만족하며 성불한다.

 

하지만 여기서 비극이 있었다. 오토나시는 삶에 대한 미련이 없는 상태로 사후세계에 와버렸고 카나데를 만나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 덕에 카나데를 만나고 싶다는 '삶에 대한 미련'이 아닌 '사후세계에 대한 미련'이 생겨버려 영원히 성불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 결과, 오토나시는 카나데가 사라진 것을 슬퍼하며 이후로도 사후세계에 계속 머무르게 된다. 사후세계에 와 길을 잃고 해메는 영혼들을 도와주며 그저 기다린다(13.5화). 너무 오랜 기다림 끝에 지쳐버린 자신을 NPC화 시킨채 카나데를 다시 만날 날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결국 카나데의 영혼은 오토나시를 구원하기 위해 기억이 리셋된 상태로 다시 사후세계로 오게 된다(위의 두 번째 가설과 흡사하다. 입장은 서로 반대가 되었지만). 카나데가 다시 사후세계에 왔음이 확인된 NPC 오토나시는 그녀에 대한 강한 애정으로 NPC화를 풀고 기억이 리셋된 채 다시 인간으로 돌아간다. 1화에서 NPC의 교복을 입고 있던 오토나시도 이 가설대로라면 설명이 된다. 그리고 이 시점부터 바로 1화가 시작된다.

 

 

정리하자면

 

1. 오토나시가 길을 잃고 해메다 미련이 없는 상태로 사후세계에 옴.

2. 카나데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사후세계에 미련이 생겨버림.

3. 카나데가 자신의 심장 주인이 오토나시인 걸 깨닫고 고마움을 전한 뒤 성불.

4. 오토나시는 카나데에 대한 미련이 남아 사후세계에 남음.

5. 사후세계에 온 영혼들을 구제하며 카나데를 기다림.

6. 너무나도 지쳐서 자신을 NPC화한 뒤 카나데를 기다림.

7. 사후세계에 타치바나 카나데가 기억이 리셋된 채 나타남.

8. 오토나시가 NPC화를 풀고 기억이 리셋된 채 인간화.

9. 다시 2로.

 

이 비극적인 사랑의 결과는 영원한 루프로 이어지게 된다. 힝ㅠㅠ